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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나에게 빛을 보낼 때

[더 잘 차려서 나에게 먹여줄 것] 밥이 안 넘어간다. 목구멍이 붙어 버린 걸까? 먹어보려 해도 삼켜지지 않는다. 눈동자만 올려 눈치를 살핀다. 엄마의 밥그릇이 그대로다. “이별 한 번 요란스럽다.” 탁! 식탁에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엄마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목젖이 버석하다. “우리 헤어지자.” 한 줄 문장이 여섯 발의 총알로 몸을 관통했다. 함께 했던 계절과 시간, 모든 기억이 한 마디 말로 흩어졌다.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떨어지는 꽃잎이 아쉬워도 봄을 잡을 수는 없으니까. 내가 숟가락을 놓으면 엄마도 숟가락을 놓았다. 몰아서 쉬는 숨의 끝에 엄마의 긴 한숨이 따라다녔다. 울다 잠드는 것을 반복하던 어느 새벽. 머리를 쓰다듬는 익숙한 ..
[더 잘 차려서 나에게 먹여줄 것]


밥이 안 넘어간다. 목구멍이 붙어 버린 걸까? 먹어보려 해도 삼켜지지 않는다. 눈동자만 올려 눈치를 살핀다. 엄마의 밥그릇이 그대로다.

“이별 한 번 요란스럽다.”
탁! 식탁에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엄마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목젖이 버석하다.
“우리 헤어지자.”
한 줄 문장이 여섯 발의 총알로 몸을 관통했다. 함께 했던 계절과 시간, 모든 기억이 한 마디 말로 흩어졌다.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떨어지는 꽃잎이 아쉬워도 봄을 잡을 수는 없으니까.

내가 숟가락을 놓으면 엄마도 숟가락을 놓았다. 몰아서 쉬는 숨의 끝에 엄마의 긴 한숨이 따라다녔다. 울다 잠드는 것을 반복하던 어느 새벽. 머리를 쓰다듬는 익숙한 손길에 정신이 들었다. 눈을 뜨려다가 엄마인 것을 알고 가만히 그 손길을 받았다. 따뜻했다.
“그렇게 힘들면 엄마가 전화 한 번 해볼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엄마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었다.

해가 뜨자 벌떡 일어나 뜨거운 물을 틀었다. 끈적하게 달라붙은 미련을 벅벅 문질러 씻었다. 몸이 개운해지고 정신이 맑아졌다. 방문을 열고 엄마가 나왔다. 일부러 배에 힘을 주며 말했다.
“아~ 배고파 엄마, 돼지고기 많이 넣어서 김치찌개 끓여줘.”
엄마는 대답도 하지 않고 냉동실 문부터 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싱거운 이십 대 이야기다.

언제부터였을까? 마음이 아프면 구석으로 도망쳤다. 컴컴한 곳에서 두 손으로 얼굴을 묻고 나를 숨겼다. 스스로를 내팽개치는 것으로 가까운 사람에게 화를 냈다. 내가 선택한 방식은 나와 함께 긴 울음을 우는 사람에게까지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제 삶이 입맛을 빼앗아 가면 붉은빛이 좋은 돼지고기 한 근을 산다. 시큼하게 잘 익은 김장김치 한 포기를 꺼내 큼직하게 썬다. 두부를 먹기 좋게 자르고 대파의 흰 부분을 송송 썰어 보글보글 찌개를 끓인다. 잘 익은 쌀밥 한 그릇에 김치찌개로 배를 두둑하게 채우면 구멍 난 마음이 든든하게 찬다. 마음이 아프면 나를 더 잘 챙겨준다. 좋은 걸 먹여주고 푹 재운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도와 달라고 손을 내민다. 함께 울어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나면 원래의 상태로 돌아올 수 있다. 회복된다. 다시 가득 힘이 채워진다.
10년간 화장품 회사에서 강사로 근무했다. 지금은 남매를 키우며 글을 쓰고 있다. 22년 공저 에세이 <괜찮은 오늘, 꿈꾸는 나>로 작품 활동을 시작.
23년 현재 네이버에서 라비타노바 라는 필명으로 <용서못해, 조인턴>을 연재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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